KDI 현정택 원장에게 듣는 2006년 한국 경제
금리는 낮추고 부동산은 잡고 누수세금 찾아내라
ㅁ원화절상, 내수와 물가엔 유리한 측면도
ㅁ금리인상으로 경기 불씨 꺼트려선 안 돼
ㅁ땅값 상승 부추기는 지역개발
자제해야
ㅁ걷힌 세금 효율적 집행, 누수방지 중요
ㅁ美 쌍둥이적자, 세계 경제 시한폭탄 염려
새해 벽두부터 우리
경제에는 희소식과 우울한 소식이 교차하고 있다. 각종 지표상 경기회복이 빨라지고 있다는 징후가 보이는가 하면, 원·달러 환율 급락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하고 수출기업들은 걱정이 많다.
올해 한국 경제는 5% 성장을 달성하느냐의 여부가 당면 과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주요
연구기관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올해 GDP 성장률을 5%로 전망한 곳이다.
지난해 11월 KDI 신임 원장으로 현정택 원장이 취임한
지 이제 만 두 달이 됐다.
현 원장에게서, 올해 한국 경제의 주요 이슈와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 올해
우리 경제의 5% 성장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그리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KDI는 가장 먼저 금년도
성장률을 5%로 전망했습니다. 지난해 3분기 시점에서, 이미 5% 성장 전망치를 제시했습니다. 다른 연구기관들이 4%, 많아야 4.5%를
예상하던 당시에는 매우 과감한 것이었지요.
저희가 먼저 5%를 치고 나오자 한국은행이, 다시 재정경제부가 따라 오더군요. 민간
경제연구소들도 공식적 전망치는 5%에 못 미치지만, 내심으로는 그 수치에 동의합니다. 올해 5% 성장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돼 있고,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5%라는 의미는 그 동안 워낙 경기와 성장률이 나빴던 데 따른 ‘기저효과’가 크고, 분야별 체감도도
달라 모든 사람들이 경기가 좋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장률 5% 달성에는 해외요인이 변수인데, 여기에는
유가동향과 조류인플루엔자 확산 여부도 포함됩니다. 국내적으로는 소비와 설비투자가 문제인데, 올해에는 가시적 변화가 있지 않을까 봅니다.
- 연초부터 환율이 불안한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처럼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환율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환율 문제는 세계 경제의 불균형 차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흐름도 있습니다.
금년도 달러가치 하락 추세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여유가 있고, 절상압력의 일차 타깃도
이 두 나라가 될 겁니다.
원화가치 절하는 우리 경제에 좋고, 절상은 나쁘다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예측 가능하게
점진적으로 움직인다면, 절상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내수와 물가에는 절상이 유리한 측면이 있죠.
다만 지나친 급등락은
최대한 막아야 합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런 환율 급변동을 막아주고, 환변동 보험 등 환 리스크 헤지 수단을 확대해 줘야 합니다.
- 현재 외환 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너무 초과하고 있어, 보유 외환의 운용수단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데요.
우리의 외환 보유액이 다소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달러를 많이 쌓아두고 있다지만,
우리는 과거 IMF 위기라는 홍역을 한 번 치른 바 있어, 위기에 대한 적응 능력이 있습니다.
2000억달러를 초과하는 부분
만큼은 최대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펀드나 채권 등에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 금리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KDI는
금리인상에 대해 신중론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KDI는 이미 작년 4분기 전망에서, 분명히 밝혔습니다. 불황이 끝나면
고금리시대로 넘어간다는 원칙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금리인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입니다.
세계 경제의 사이클과
한국 경제가 상충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금리가 그런 경우죠.
미국은 이미 경기가 피크를 지나 하강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는 이제 막 올라가려고 하는 중입니다. 지금은 경기를 살리는 게 우선입니다. 섣불리 금리를 인상했다가, 막 피어오르는 경기의 불씨를 꺼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 현재 부동산시장에는 거품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십니까? 또 부동산경기 연착륙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요즘은 사람들이 건설경기를 부양해 경기를 살려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재산내역을 살펴보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나머지 20%가 금융자산입니다. 그러나
외국은 그 반대로, 2대 8의 비율이죠.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땅과 아파트에 집착합니다. 그런 의식구조를 깨뜨리자는 것이 지난해의
8·31 대책입니다.
안 했으면 모를까, 기왕에 국가적 의지를 담아 정책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부동산가격
안정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합니다.
땅값 상승을 부추기는 각 지역의 개발 붐 역시, 최소한 올해만이라도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 얼마 전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1인당 GNP가 오는 2050년에는 세계 2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런
장밋빛 전망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우리 스스로를 비관적으로 보는 나라가 없습니다.
예전부터 ‘총체적 위기’니 뭐니 하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부정적으로 평가절하하곤 했는데, 거꾸로 외국인들은 우리 경제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한국처럼 정부부채 비율이 낮고, 초고속 인터넷 등 각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나라가 드물다는 것입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는 이런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킨 건데, 물론 허점도 있습니다.
한국과 브릭스(BRICs) 국가들의
달러화 대비 통화가치 절상이 누적적으로 이루어져, 저절로 1인당 GNP가 늘어나는 것을 예상하고 있지요.
솔직히 정통
연구기관이라면 이런 보고서는 못 내놓을 겁니다. 골드만삭스는 투자기관으로서 얘깃거리를 만들어 내고, 우리는 모처럼 희망적 얘기를 들어서 기분
좋고, 뭐 그런 거죠.
- 지금 세계 경제는 미국과 중국에 상당 부분 좌우되는 것 같습니다. 글로벌 경제의 현안과 잠재적
불안요인은 무엇입니까.
현재 세계 경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불균형’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의 흐름은 중국·일본·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출한 상품을 미국에서 소비해 주고, 그에 따라
발생하는 미국의 막대한 적자를 이들 동아시아 국가가 미국의 채권을 사주고 돈을 빌려주면서, 메워주고 있습니다. 환율문제도 이런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이것은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폭탄이 터지지 않게 억제하는 힘은 미국이 세계 초강대국이며 최고 부자나라라는
믿음인데, 이 믿음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무리 없이,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가느냐가 세계 경제의 원활한 발전을
위한 관건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과거 미국은 적자가 쌓여도 느긋하게 지내다가, 갑자기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무리하게 비경제적인
방법을 동원,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 1985년의 ‘플라자 합의’가 그것인데, 일본이 10년 간 장기불황에 허덕인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죠.
벌써부터 미국 내에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쇼크 요법입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미국에는 별 영향이 없고, 당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문제죠.
한편 중국은 최근 몇 년
간, 연 9∼10%의 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도 성장동력을 얻고 있지요.
하지만 중국의 경제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공산당의 정치 엘리트들입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국영기업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CEO가 아니라 당서기가 합니다. 대부분이
적자죠. 이런 기업에 은행들은 거액을 대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그 동안 어물어물 넘어가 왔고, 당분간은 그렇게
굴러가겠지만, 글쎄요. 얼마나 그런 식으로 계속 갈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죠.
- 노무현 대통령도 신년연설에서 강조했듯이,
양극화 해소문제는 한국사회의 당면과제입니다. 이를 위한 정책대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양극화 대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일자리 창출입니다. 이를 위해 그 동안 제조업과 수출만 강조되던 데서 벗어나, 서비스업과 내수를 중요시해야 할
것입니다. 서비스업 중에서도 특히 사회복지 관련 서비스가 앞으로 수요도 많고, 고용효과도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만들어진
일자리에서 일할 사람들에게, 직업훈련을 시키는 일이 되겠습니다.
셋째로는 그래도 안 되는 계층은 최종적으로 사회안전망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며, 정부의 몫이 되겠지요.
이런 원칙만 충실히 지킨다면, 논란이 되고 있는 재원 문제는 부차적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그렇지만, 결국 재원마련을 위해 기업에 부담을 가중시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중산층 이상 계층의 세금부담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많습니다.
재원은 결국 조세가 되겠지만, 세율 인상보다 세원 확충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철저한 세원 추적과 자영업자 및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공평과세 등으로, 현재 50%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납세자를 70∼80%까지 확대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만약 그래도 추가 세수가 필요하다면, 과연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세금징수도 중요하지만, 걷힌 세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집행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복지지출 분야에서는 이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에도 누수가 많습니다.
- 증권시장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우리 경제의 체질상, 현재의 주가수준은 적절한 것인지, 추가상승 여력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주가는 ‘랜덤
워크(random walk)’라고 하죠. 토드 부크홀츠 미 하버드대 교수는 개가 골라주는 주식을 사라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주가란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으로, 아무도 모릅니다. 주가에는 이미 모든 관련정보가 반영돼 있기 때문에, 어떤 주식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도 없고, 어떻게 움직일 지도 알 수 없죠. 정책이 증시에 반영될 여지도 별로 없으므로,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것
같습니다.
He is…
이론·실무 겸비한 ‘지략가’
“대학교수 시절에는 젊은 학생들과 지내는 하루
하루가 즐거웠는데, 이 곳에 오니 책임감이 무겁습니다. 그렇지만, 왜 대학총장은 장관이고 교수는 국회의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학과 달리,
국책연구원은 내부에 대한 통솔력도 필요하고 자율성도 많은 점이 좋더군요.”
이렇게 너털웃음을 짓는 현정택 원장은 꾸밈없는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현 원장은 또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선비며, 학자풍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부드러운 얼굴 표정과 언행 속에는 깊이 있는 이론과 풍부한 실무 행정경험으로 다져진, 단단한 리더십이
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그는 행정고시 10회에 합격,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원에서 주로
공직생활을 한 경제관료 출신이다.
제4차·5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서비스산업 통계기준 수립, 산업육성정책 실효성 분석 등
우리 경제의 기틀을 다지는 데 필요한 많은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주 중국대사관 경제참사관,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주 OECD
대표부 경제공사, 외교통상부 대외직명 대사 등을 지내, 경제외교와 통상문제에 해박하다. 이런 장점 때문에, 공직을 떠난 후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로 초빙되기도 했다.
2001년에는 신설된 여성부의 초대 차관이 되어, 여성 장관을 모시고 여성 정책 수립과 여성인력 활용정책을
무리 없이 해낸 것은 특유의 부드러운 리더십 덕분이라 할 수 있다.
그의 공직생활 중 하이라이트는 2002년 7월부터 이듬해
초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활약하던 일이다.
경제수석 때, 북핵 문제 등 대외여건 악화와 국내
경기불황 염려에도 불구하고, 수출을 중심으로 활력을 회복한 한국 경제는 6.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다. 이 기간을 그는 가장 보람된
공직생활로 꼽는다.
그 후, 2003년 5월부터 인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논문과 칼럼을 통해 우리 경제의 각종 현안에
대해 무게 있는 메시지를 던지곤 했다.
지난해 11월 하순, 4개월 간 공석이던 KDI 원장에 취임한 은빛 머리카락과 부드러운
미소의 멋쟁이 현 원장. 그가 한때 위상이 흔들리던 KDI를 한국사회의 미래 어젠다를 제시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 1949년 경북 예천/ 경복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 MIT 경영학 석사/ 미
조지워싱턴대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총괄과장/ 주 중국대사관 경제참사관/ 재정경제원 대외경제국장/ 주 OECD 대표부 경제공사/
대통령비서실 정책1비서관/ 초대 여성부 차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외교통상부 대외직명 대사/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및
정석물류통상연구원 원장/ 한국개발연구원 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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