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
노 대통령은 얼마 전 연정 제의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연정 제의는 야당의 반대도 있었지만 북핵 6자회담을 비롯한 현안에 묻혀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구체적으로 한나라 당을 대상으로 하여 다시 구체적인 연정을 제의하였다. 그러나 한나라 당이 이에 차가운 반응을 보이자 어제는 청와대 기자실을 찾아 연정 제의에 대한 배경 설명을 하였다.
첫 번째, 그 기본적인 배경은 지역구도 타파이다. 지역 구도라 함은 거슬러 올라가 조선조 아니 더 일찍부터 우리나라에 희미하게 존재하여 왔던 것이었는데 근대에 이르러 한국전쟁과 몇 번의 직선제 대선을 치르면서 적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들어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지역 구도를 고착시키고 타파하지 말자라고 주장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노 대통령은 이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의를 앞세우고 치고 나온 것이다. 그러면, 지역구도 타파는 노 대통령이 말한 선거제도를 바꾸면 가능한 것인가? 만약 노 대통령의 희망대로 연정이 이루어지고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가 되어 열린우리당 후보가 영남에서 당선된다면 지역구도가 과연 타파된 것인가? 지역구도는 그렇게 간단하게 타파되지 않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에서 영남에서 국회의원 몇 명 당선된 것으로 어떻게 지역구도가 타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충청도나 강원도 분들은 우리만 소외되었나하는 마음에 우리도 우리 지역 당을 만들어야 우리의 권익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이미 자민련 이외에 충청도에 기반을 두려는 신당의 움직임은 널리 보도된 바 있다. 분명히 대의는 있다. 노 대통령은 대의를 들고 나섰다. 대의를 위하여 대통령이라는 권한도 포기할 것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구도 타파라는 대의를 이루기 위한 대안이라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대승적인 제의라고 인정하기에 너무 미흡하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진심을 야당과 국민들이 몰라준다고 푸념하고 있다. 이제 경제도 주가가 1,000 포인트가 넘을 만큼 안정되었으니 선거 개혁에 올인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사정은 대통령의 말과는 현격히 거리가 나다보니 대통령의 제안이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을 리가 없다.
두 번째의 배경은 여소야대이다.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정부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번번이 야당이 발목을 잡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의도대로 정치를 할 수가 없다는 현실인식이다. 노 대통령께 묻고 싶다, 그러면 국회는 정부에서 하자는 대로 거수기의 역할만 해주기를 원하는가? 과거 박 대통령 시절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국회는 거수기의 역할을 담당해왔다. 참여정부라는 현 정부가 또 다시 국회를 정부의 시녀로 두고 싶은가 질문하고 싶다. 그런 국회라면 선거제도 개편할 필요도 없다, 아예 국회를 없애는 게 훨씬 낫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가 국회의 제 역할을 못하고 국민들의 세금만 축내고 있다고 아우성인데 정부의 정책에 100% 찬성하는 그런 국회는 사절한다. 노 대통령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이, 또 탄핵의 소용돌이에서 그를 지지해준 국민들이 한편으로는 여대야소였던 국회를 최근 여소야대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깊이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왜 한나라 당이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계속적으로 대립 각을 세워왔던 한나라 당을 연정의 파트너로 지목했느냐 하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한나라 당과 연정을 하게 되면 정부 안에서 한나라 당이 정부의 정책과 입장을 보다 더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 같이 여당이 되었으니 같이 잘해보자, 뭐 그런 논지로 이해가 된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정부에 대한 견제에 대하여는, 정부안에서 한나라 당과 열린우리당과의 절충 가운데 필요한 견제가 한 정부의 울타리 안에서 절묘하게 이루어지리라고 주장할 듯하다. 권력은 잡아본 사람만이 안다는 말이 있다. 연정이 이루어질 경우에 국회 의석의 90% 이상을 갖게 되는 연립정부에서의 참여하는 한나라 당은 이미 야당이 아니다, 여당인 것이다. 권력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이미 맛 본 사람도 많기는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아마 한나라 당은 스스로 궤멸할 것이다. 한나라 당의 정체성을 잃게 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김대중 정부에서 쉽게 발견한다. 자민련에서 정부에 국무총리로 입각한 분은 돌아올 때 자민련으로 돌아오지 못하였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노 대통령이 판단하건대 한나라 당은 기실 우려할 만한 상대가 못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나라 당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자화상일 것이다.
덤으로 또 하나의 관점은, 노 대통령은 이번 연정 제안에도 정권을 걸었다. 노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지 몇 번째인지 잘 모르겠다. 노 대통령 스스로가 대통령 직은 본인이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또는 내가 아니라 누구에게 주고 싶다고 해서 줄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이미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아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지난 번 건국 이후 야당에 의한 초유의 대통령 탄핵을 당했을 때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하여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던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노 대통령은 대통령의 권한도 마음대로 넘겨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노 대통령에게 진정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제 2년여 남은 임기를 특출한 일 말고 조용히 중용의 길로 애국 애족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수행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나 하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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