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성공 - 이승종 목사 (샌디에이고 예수마을교회)
며칠간 조국은 부산스러운 모습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난자 기증 윤리 문제에 따른 진실 게임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인터넷의 누리꾼과 언론이 첨예한 감정적인 대립의 각을 세우고 국익의 우선이라는 여론에 떠밀려서
과학의 윤리적 가치 담론자나 언급자들을 매국노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크리스천 구독자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아도
황교수의 연구에 대한 윤리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시각이 이 정도라면 한국 교회의 윤리적인 인식 수준에 적신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학의 생명성은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증명입니다.
과학의 진보는 무슨 이유로든 인권이나 생명 윤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업적이나 학문적 개가와 함께 그 정직성이 허물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황교수 자신의 고백처럼 "눈앞의 일과 성취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는 얘기는
열정과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과학자로서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솔직하게 실수를 시인 진솔한 자세로 용서를 구하는 용기는 학자의 그릇을 가름키에 아쉽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는 한 시대의 위대한 영웅이기보다는 건실한 치유자로 남아아 할 것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열화같이 황 박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윤리 문제를 보도한 방송인을 향하여 무장 폭도와 같습니다.
국민적 영웅을 생트집 잡아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온 반대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기세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자진해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자발적인 동참 열기가 거셉니다.
그러나 실제 줄기세포 개발로 인한 난치병 치료 가능성이 언제 가능할 지는 모릅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놀라고 있는 국민들의 통합적 응원 열기는 꼭 부러워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칫 광신적 국수주의 생명공학의 성공 나라로 인식되어서는 안됩니다.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국가적인 명제도 소중하지만
과학의 뿌리는 진실에서 출발하며 그럴수록 윤리적인 바탕이 튼튼해야 합니다.
잘 살고 부강한 나라도 중요하지만 난치병 치료의 길이 열리기 위해서는
성과를 기대하는 만큼 세계적인 윤리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힘이나 과학의 진보는 이 정도로 성장했지만 시민 의식 국민의 윤리 의식의 지평은
그만큼 함께 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적 문제인지 모릅니다.
모처럼 주어진 생명공학 선두주자의 자리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성공주의와 국민들의 조급성으로 인해서 그 위치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슬며시 스쳐가긴 했습니다만 줄기세포 특허 소유권 지분에 대한 언급은 우리 과학계가 부끄러워할 모습입니다.
성공의 폭죽을 터뜨리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장애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이 연구실 문을 시끄럽게 열었습니다.
선 밥상 차려놓고 손님 부르는 격이 되어선 웃음거리 입니다.
우리 시대의 치졸한 성공주의가 원인 입니다.
세상 얘기하기 부끄럽습니다.
사실 지금의 한국 교회가 앞장 서서 이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 합니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무조건 크고 보아야 된다는 목회자의 성공주의 입니다.
큰 목사는 큰 교회 일구면 됩니다.
한국교회의 맹신적 성공주의가 강타한 결과로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문화의 물결이 되어버린 선교의 겉치례 의식으로 인해 이미 세계선교의 장자 의식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도대체 수천명 목사가 남아도는 나라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사례인지 모를 일입니다.
한국 교회 성장 디클라인을 보면서도 원리 규명보다는 수단과 전략 수정에만 혈안 입니다.
진실이 성공보다 소중합니다.
크리스챤은 일의 성취나 성공마져도 복음 안에서 검증받아야 합니다.
- 중앙일보 미주판 -
며칠간 조국은 부산스러운 모습입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의 난자 기증 윤리 문제에 따른 진실 게임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인터넷의 누리꾼과 언론이 첨예한 감정적인 대립의 각을 세우고 국익의 우선이라는 여론에 떠밀려서
과학의 윤리적 가치 담론자나 언급자들을 매국노로 여론 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크리스천 구독자라고 할 수 있는 국민일보가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아도
황교수의 연구에 대한 윤리 문제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시각이 이 정도라면 한국 교회의 윤리적인 인식 수준에 적신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학의 생명성은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증명입니다.
과학의 진보는 무슨 이유로든 인권이나 생명 윤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의 업적이나 학문적 개가와 함께 그 정직성이 허물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황교수 자신의 고백처럼 "눈앞의 일과 성취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는 얘기는
열정과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과학자로서 잃어버린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솔직하게 실수를 시인 진솔한 자세로 용서를 구하는 용기는 학자의 그릇을 가름키에 아쉽지 않았습니다.
과학자는 한 시대의 위대한 영웅이기보다는 건실한 치유자로 남아아 할 것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열화같이 황 박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
윤리 문제를 보도한 방송인을 향하여 무장 폭도와 같습니다.
국민적 영웅을 생트집 잡아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온 반대자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기세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자진해서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자발적인 동참 열기가 거셉니다.
그러나 실제 줄기세포 개발로 인한 난치병 치료 가능성이 언제 가능할 지는 모릅니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놀라고 있는 국민들의 통합적 응원 열기는 꼭 부러워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칫 광신적 국수주의 생명공학의 성공 나라로 인식되어서는 안됩니다.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국가적인 명제도 소중하지만
과학의 뿌리는 진실에서 출발하며 그럴수록 윤리적인 바탕이 튼튼해야 합니다.
잘 살고 부강한 나라도 중요하지만 난치병 치료의 길이 열리기 위해서는
성과를 기대하는 만큼 세계적인 윤리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라의 힘이나 과학의 진보는 이 정도로 성장했지만 시민 의식 국민의 윤리 의식의 지평은
그만큼 함께 서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적 문제인지 모릅니다.
모처럼 주어진 생명공학 선두주자의 자리는 축복입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성공주의와 국민들의 조급성으로 인해서 그 위치를 잃어버려서는 안됩니다.
슬며시 스쳐가긴 했습니다만 줄기세포 특허 소유권 지분에 대한 언급은 우리 과학계가 부끄러워할 모습입니다.
성공의 폭죽을 터뜨리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장애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일찍이 연구실 문을 시끄럽게 열었습니다.
선 밥상 차려놓고 손님 부르는 격이 되어선 웃음거리 입니다.
우리 시대의 치졸한 성공주의가 원인 입니다.
세상 얘기하기 부끄럽습니다.
사실 지금의 한국 교회가 앞장 서서 이런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 합니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무조건 크고 보아야 된다는 목회자의 성공주의 입니다.
큰 목사는 큰 교회 일구면 됩니다.
한국교회의 맹신적 성공주의가 강타한 결과로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문화의 물결이 되어버린 선교의 겉치례 의식으로 인해 이미 세계선교의 장자 의식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도대체 수천명 목사가 남아도는 나라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 있을 법한 사례인지 모를 일입니다.
한국 교회 성장 디클라인을 보면서도 원리 규명보다는 수단과 전략 수정에만 혈안 입니다.
진실이 성공보다 소중합니다.
크리스챤은 일의 성취나 성공마져도 복음 안에서 검증받아야 합니다.
- 중앙일보 미주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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