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위한 고민

비뚤어진 오랜 교육의 후유증

흔이 할아버지 2006. 6. 29. 11:39
 

비뚤어진 오랜 교육의 후유증


어제 수요예배의 설교자는 P국에 선교사로 일하다가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였다가 이제 한 달 후면 다시 선교지로 돌아가는 C 선교사이었습니다. 미국의 선교기관에서 파송한 선교사이었기에 미국의 규정에 의하여 현지화 된 프로그램에 의하여 현지인 선교를 하는 분입니다. 회교권인 P국에서 선교하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선교사의 장모님이 선교지를 방문하셨다가 열악한 환경에 그만 눈물만 흘리다가 예정 체류기간도 못 견디고 돌아오신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짐작은 했었지만 우리 모두 찡한 마음을 가졌던 기억을 가졌던 분입니다. 한국에 한 해에도 몇 번씩 드나드는 선교사들이 있는 반면 이 분은 중간에 한 번인가 특별한 일로 귀국한 일 이외에는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돌아올 정도로 오직 선교를 위하여 사는 분이라고 들었고 또 훌륭한 선교사이신 것이 사실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설교를 듣다가 말씀 한마디에 깜짝 놀랐습니다. 누5:1-11 본문에 ‘보배를 발견한 삶‘ 이라는 제목의 설교이었는데 베드로와 예수님의 관계를 교인과 목사님의 관계로 설명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설교 어디 한두 번 들어 보았겠습니까? 그러나 목숨을 걸고 선교하시는 선교사에게서 이러한 인식을 듣게 된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부흥사들이 흔히 말하는 목사님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거나 아니면 먼 미래를 영적으로 내다보고 말씀하시는 분이고, 교인들은 육적인 것이나 바라보거나 기껏 목사님을 부른다른게 “목짜-님” 아직 발음도 서투른 어린애 말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일이 해가 더해가고 반복되어지다보니 교인은 그저 ’목사님‘ 발음도 제대로 못하고 “목짜-님”하고 부르는 유아적인 모습이고 목사님은 예수님과 다름없는 자리에 서게 되고 말았습니다. 오랜 비뚤어진 교육에 의한 심각한 후유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교인이 자신을 감히 베드로와 맞먹어 보겠다고 비유를 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목사님은 예수님으로 비유를 하기까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종이라는 목사가 갑자기 예수의 자리에 서게 됨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뿌리 깊은 비뚤어진 교육의 결과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교인이든 목사이든 다 같은 하나님의 자녀일 뿐이지 않습니까? 종교개혁으로 타파 된 듯싶었던 중간자는커녕 이제는 예수님과 동격으로 올라서고 싶은가 봅니다. 누가복음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백성을 하나님은 의인 아흔 아홉보다 더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목사님들은 회개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돌아온 교인들을 그렇게 유치한 졸로만 보이십니까? 그렇게 졸로만 보는 마음으로 어떻게 생명을 구원하며 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문제에는 교인들의 잘못 또한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이 옳든 그르든 ‘아멘’을 외치기를 누가 먼저 하나 시합하는 것처럼 무조건 큰 소리로 외치는 교인들과, 잘못을 알면서도 침묵을 지키고 있는 다수의 교인들 또한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몰라서 그런 교인은 그렇다 치고, 알면서 침묵하는 교인들의 책임이 더욱 크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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