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올바른 일천번제

흔이 할아버지 2008. 4. 28. 09:19

열왕기상 3:6-15

사람이 자기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되면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게 됩니다.

즉 진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지 못하게 되고 진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되고

진리가 깨닫게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자기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 다시 말해서 '자기 관심' '자기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 무지합니다.

이런 말을 들어도 전혀 마음이 동요 되거나 자신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앞서 말한 대로 이미 지독한 자기 사랑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기에

그 마음이 진리쪽으로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사랑에 붙들려 있는 사람들에게는 속담 그대로 "쇠귀에 경읽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은 자기 사랑입니다.

때문에 자기 사랑에 의해 천국 가고 싶다는 욕망에 얽매이게 되면 천국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즉 천국에 가고 싶다는 욕망만 있을 뿐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병든 자가 병낫는 것에만 관심을 두게 되면 질병을 통해서 증거되고 있는 죄와 형벌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 문제 해결에 대한 관심, 자기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고 진리를 대하기에

진리가 계시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진리가 이끌어 가는 진리의 세계 역시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혹 이말로 인하여 여러분이 교회를 나와야 할 이유가 흔들린다거나, 아니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든다면 그것은 '자기 사랑'에 얽매인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가운데서 선택받은 인간이 그 속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지

인간 문제 해결을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두고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 나라의 충만을 위해 자기 백성을 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이고

하나님의 택함과 부름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이 곧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지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 나라, 즉 천국을 만드시고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기에게 관심을 두게되면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목적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앙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기를 향한 관심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사람의 모습입니다.

"날 위해서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해주시는 분인가?"에 대한 관심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어떻게 일하시며 나는 하나님의 일에서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관심으로 바뀐 것이 신앙이며 성령이 임한 거듭난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모든 관심이 하나님께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앞 본문에는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자기 사랑에 매인 자들에게는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방법 또는 비결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솔로몬도 역시 죄인에 불과할 뿐인데 그런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는 말씀은 구하는 것을 들어봐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면 들어주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어주지 않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솔로몬이 구하면 무엇이든 들어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자기 사랑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처럼 자기 문제, 즉 부와 명예와 영광과 권력과 힘을 구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혹 하나님은 솔로몬이 그런것을 구하지 않을 것을 알고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솔로몬을 믿고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으로 봐야 합니까?

 

요한복음 5장 17절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무엇이든"이라는 이 말씀은 구하는 모든 것이라는 의미임이 분명합니다. 

즉 들어봐서 합당하지 않는 것은 예외라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인간이 자기 욕심으로 구하는 모든 것도 구하기만 하면 다 들어 준다는 것입니까?

자기 사랑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이러한 기도와 응답을 꿈꾸며 예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기도 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 그런 뜻은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말씀을 먼저 하십니다.

즉 "무엇이든"이라는 말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그 속에 거하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자기 욕망에 사로잡힌 모든 인간을 포함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내 속에 거한다는 것은 다른말로 하면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음을 뜻합니다.

결국 예수님은 예수님의 다스림 안에 있는 자들에게 "무엇이든 구하면"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신자들은 절대 자기 욕심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다스림을 믿으시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디시 말해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랑에 매인 인간을 다스리고 고치시면서

진리 안에 붙들어 놓으시는 예수님 자신의 다스림을 믿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이해 할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을 구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솔로몬을 택하시고 다스리시고 붙들고 계심을 믿으신 다는 것입니다.

 

7-10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 할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다윗을 대신해서 왕의 자리에 있게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즉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왕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왕이 된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왕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를 생각하고 자신을 바라보기에

"작은 아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구하게 되는 내용인 것입니다.

솔로몬이 믿음이 좋아서 자기를 위해 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어떤 인간으로 고쳐가고

새롭게 하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악을 분별하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은 앞서 말한대로 다윗의 왕위가

이스라엘 안에서 어떤 역할을 위해 있는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있는 자와 다스림에 있지 아니한 자의 차이 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항상 자기만을 바라보는 인간을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는 인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느냐를 보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로 살아가는 가를 알수 있다고도 할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오늘날 신자의 기도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쑤 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의 일을 바라본다면 그에게서 나오는 기도는 모든 것이 자신의 문제 해결로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만 잘되면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것을 기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언부언 하는 이방인의 기도로 여길 뿐입니다.

 

113절을 보면"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이 말씀을 바른 기도를 하면 하나님은 부와 영광도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해선 안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부와 영광을 얻기 위해 바른 기도를 해야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에게 부와 영광을 주시는 것은 인간의 부와 영광이라는 것은 인간의 기도와 상관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부와 영광을 복이라고 여기면서인간의 행위나 기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면 그리고 정성을 다해 기도하면 하나님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이 입은 부와 영광이라는 것도 결국 들의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이 구하지도 아니한 부와 영광을 주신 것은 바른 기도를 한것에 대한 상이 아니고

부와 영광이 좋은 것이기 때문도 아니라 부와 영광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얻어야 할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솔로몬의 기도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하나님을 생각합니까?

또한 여러분은 여러분의 기도에서 어떤 여러분의 모습을 보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이 기도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사랑에 매인 나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를 고쳐 가시고 새롭게 하시는 흔적이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기도의 내용이 날 위한 것이 없다고 해서 소위 말하는 바른 기도를 했다고 해서 '나는 바른 신자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 역시 자신에게 매어있는 자라고 말할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른 기도를 했으니까 나는 바른 신자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끝까지 나 자신을 보지 않게 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자는 솔로몬이 왕이된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다윗왕의 자리 이스라엘에서의 왕의 역할을 생각함으로

지혜를 구하게 된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신자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는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이 세상에 복음을 맡기시고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자의 역할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해야 할 것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재환 님의 글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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