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라는 닉으로 활동하시는 자비량 목사님의 헌금에 대한 설교를 옮겨왔습니다.
헌금의 원리
성경 말씀: 고린도후서 9:5-7(신약295)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찬송: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머리 말
오늘은 2007년 교회 재정을 결산하고, 2008년 새 해 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공동의회를 모이는 날입니다. 그래서 헌금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대부분의 목사들이 헌금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성도님들이 가장 듣기 싫은 설교가 헌금에 대한 설교일 것입니다. 저는 작년 3월 첫 주에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먼저 자신을 드리고”라는 제목으로 헌금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일 년에 한 번쯤은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의 헌금 방법이 독특하여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있고, 아는 분들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더러 오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님들께서 우리 교회의 헌금 방법을 정확하게 이해하시고, 공감하실 때까지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헌금에 대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예산 동결
작년에 우리가 헌금한 총액은 3,500만원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약 10개 월 간의 헌금 총액입니다. 그래서 금년 예산은 이것을 12개월로 환산하여 약 4,200만 원 정도로 편성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은 매년 예산을 편성할 때 전년도에 비하여 물가상승율과 교인 증가율을 감안하여 예산총액을 증액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모은 항목들을 증액합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예산 총액은 작년과 동일하게 편성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예산을 증액하면, 성도님들께서 생각하시기를, “아, 목사가 작년보다 알아서 더 내라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할까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목사로서 민망하기 그지없습니다. 헌금은 내는 분들이 알아서, 마음에 정한대로 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예산을 증액하면 “그만큼 더 내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과 같은 금액으로 한 것입니다.
물론 저는 금년에도 우리 성도님들의 수가 많이 증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헌금도 증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님들께서 마음의 부담을 느끼지 않으시도록 증액하지 않은 것입니다.
둘째, 일반 교회에서는 연초에 지출 예산을 증액 편성합니다. 그리고 예산만큼 헌금이 들어오지 않을 때는 필요 불급한 지출을 줄여서 수입과 지출을 맞춥니다. 이때 필요 불급한 지출로 줄여지는 항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경우 선교 구제비 예산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에서는 모든 지출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편성하고, 수입이 예산을 초과하면 이것을 오히려 선교구제비로 사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산과 성도 수
우리 교회의 예산 규모는 성도님들의 수에 비하여 많을 것 같습니까, 적을 것 같습니까? 제가 예산 편성을 앞두고 다른 교회의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출석 성도 1인당 1백만 원 정도로 예산을 편성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처럼 출석 성도의 수가 70명이라면 7천만 원 정도로 편성하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교회는 성도 수가 80명 정도인데 1억 원을 편성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의 수가 비슷한, 다른 교회들의 예산 규모가 우리 교회의 두 배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 다른 교회들이 헌금을 강조하는 반면에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을 강조하지도 않고, 모든 헌금을 무기명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다 그렇고, 우리 교회만 좀 특별하게 헌금을 하기 때문에, 다른 교회가 예산 규모가 정상이고 우리 교회의 예산 규모는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우리 교회가 정상이고 다른 교회가 비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교회의 경우에도 절반 정도는 성도님들이 자진해서 기쁘게 내는 것이고, 나머지는 목사의 독려로, 기복적인 생각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내는 헌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목사가 헌금을 강조하면 헌금 액수가 늘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교회는 부자가 되고, 교회의 빌딩은 올라가는데, 성도들의 살림을 펴질 줄을 모른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의 예산 규모가 오히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지만 알뜰하게 사용한다면, 많이 거둬서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교회들 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헌금 의 종류
이제 헌금의 종류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많은 종류의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헌금, 주정헌금, 감사헌금, 십일조헌금, 이것이 기본입니다. 여기에 각종 절기헌금, 선교헌금, 여기에 일천 번제라고 하는 것까지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금년에 딱 한 가지 헌금만을 하였습니다. 감사헌금입니다. 모든 헌금이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헌금으로 일원화하였습니다. 각종 헌금의 종류를 없앤 첫 번째 이유는, 십일조에 대한 부담을 없애기 위해서였습니다. 헌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십일조이고, 가장 부담을 주는 것이 바로 십일조헌금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라는 명목 자체를 없애고, 헌금의 종류를 일원화한 것입니다.
지난 일 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다른 교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광고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 절기들을 말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 것이 절기헌금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절기 자체를 의미 있게 보내는 것 보다 헌금이 얼마나 들어오는가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다고 욕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절기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목적헌금
우리 교회는 금년에는 한 가지 헌금을 더 추가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목적헌금입니다. 목적헌금이라는 명목을 추가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 총액의 50%를 선교구제비로 사용한다고 정관에 규정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사업이 잘 되어 예배당을 건축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자발적으로 10억 원을 헌금한다면, 그 헌금도 현재는 감사헌금의 명목으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정관에 따라 5억 원을 선교구제비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헌금한 사람의 의도와 다르게 헌금이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하는 사람이 헌금의 용도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그 헌금은 지정된 용도에만 사용될 것입니다.
반면에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비록 재정의 50%를 선교구제비로 사용한다고 해도, 그것이 오히려 적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구제비로만 사용하라”고 지정하여 헌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헌금은 예산과 관계없이 구제비로 추가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헌금이라는 명목을 추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금년에는 성도님들께서 반드시 목적헌금을 하시라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하실 생각이 있는 분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적헌금의 예산 란에는 0으로 표시했습니다.
헌금의 기준-“마음에 정한대로”
이제 헌금의 방법에 대하여 본문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정한 헌금의 기준은 “그 마음에 정한대로”입니다. 목사나 장로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고, 또는 교회가 정한 기준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헌금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정해서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헌금이라는 명목 자체가 없고, 그냥 감사헌금만 합니다. 그러나 오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헌금의 기준으로 십일조를 정해 놓았습니다. 적어도 제직이라면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지난 3월에 말씀드렸지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일조라는 것은 아주 잘못된 기준입니다. 교회가 십일조 헌금을 정해 놓았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째, 아무리 가난해도 1/10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부자들은 1/10만 하면 자기 의무는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를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가진 전부를 바쳐야 합니다. 전부를 교회에 바치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칠 수 있습니다. 첫째로 교회에 헌금하여 바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사용해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내가 사용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면 그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리면 하나님의 종이 먹고 입는 것은 모두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될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것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전부를 생활비로 사용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 헌금하지 않고, 소득의 전부를 가족을 위하여 사용하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너무 부족하다면 오히려 교회에서 돈을 가져다가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흔히 구제비라고 부릅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상대적으로 소득의 적은 부분만으로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1/10 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얼마를 헌금하느냐와 관계없이, 생활비로 사용하고 남은 것 중에서 많은 부분을 교회에 헌금하든지, 아니면 직접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에 헌금해야 할 부분을 일률적으로 정할 수가 없고, 각 사람이 마음에 정한대로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헌금의 하한선-“인색함으로 하지 말 것”
그러나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는 것이 헌금하기 싫은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하라고 하면서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덧붙인 것입니다. 이것이 헌금의 하한선입니다.
재물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예수님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벌 수 있는 한 버는 것”입니다. 합법적으로, 열심히 일해서 벌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낄 수 있는 한 아껴야” 합니다.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왜요? 모아서 부자 되려고요? 아닙니다. 이렇게 해서 아낀 재물을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줄 수 있는 한 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기준입니다.
“내가 벌었으니 내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는 생각은 비신앙적인 생각입니다. 내가 벌었지만,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많은 재물을 주신 이유는 다른 사람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하거나 이웃과 나누는 것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헌금의 상한선-“억지로 하지 말 것”
많을수록 좋다면 상한선이 없다는 것입니까? 아니요,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상한선입니다.
사실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해도 억지로 하게 됩니다. “내가 권사인데, 내가 장로인데 어떻게 남보다 적게 하겠어.” 이런 생각이 누구나 들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남의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젊었을 때, 젊었기 때문에 아직 저축된 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건축을 한다고 합니다. 젊지만 교회의 중추 맴버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적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 억지로 한 헌금은 헌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는 헌금,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헌금은 받지를 않습니다. 회계집사님들은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받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 헌금을 받지 않으십니다. 저는 그 때, 이것을 알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억지로 했었습니다.
여러분, 성도들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즉 억지로 헌금하지 않고, 그야말로 마음에 정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무기명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모든 헌금을 무기명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말로만 “이렇게 하십시오, 저렇게 하십시오”라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을 “억지로 하지 말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기명이기 때문에 누구도 억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맺는 말
여러분, 우리는 재물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주신 것은, 내 가족을 잘 부양하고,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이웃도 부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함께 읽어 봅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렇게 헌금하여 하나님의 “잘 했다” 칭찬 받는 일꾼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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