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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 예향에서

흔이 할아버지 2006. 7. 12. 10:35
오늘 아침에 예향에서 받은 메일을 약간 편집하였고

아래에 제 의견을 첨부하였음을 양해하여 주십시요.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잭 캘리라는 한 신문기자가 소말리아의 비극을 취재하다가 겪은 체험담이 있습니다.
    기자 일행이 수도 모가디슈에 있을 때의 일인데 그때는 기근이 극심한 때였습니다.
    기자가 한 마을에 들어갔을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습니다.
    그 기자는 한 작은 소년을 발견했습니다.
    소년은 온몸이 벌레에 물려 있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가 불룩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 있었으며, 피부는 한 백살이나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일행 중의 한 사진기자가 과일 하나 갖고 있어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너무 허약해서 그것을 들고 있을 힘이 없었습니다. 
    기자는 그것을 반으로 잘라서 소년에게 주었습니다.
    소년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는 눈짓을 하더니 마을을 향해 걸어 갔습니다.
    기자 일행이 소년의 뒤를 따라갔지만 소년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이는 한 작은 아이가 땅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아이의 눈은 완전히 감겨 있었습니다. 
    이 작은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습니다. 
    형은 자신의 동생 곁에 무릎을 꿇더니 
    손에 쥐고 있던 과일을 한 입 베어서는 그것을 씹었습니다. 
    그리고는 동생의 입을 벌리고는 그것을 입 안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동생의 턱을 잡고 입을 벌렸다 오므렸다 하면서 
    동생이 씹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기자 일행은 그 소년이 자기 동생을 위해 보름 동안이나 
    그렇게 해온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뒤 결국 소년은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동생은 끝내 살아남았습니다. (펌 글)
    
     

     

    나는 조금의 여유밖에 없으니, 더 가진 자들이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은 하나님 앞에서는 핑계요, 궁색한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달란트 밖에 못 받았다고 해서.. 숨겨 두었다면 그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 이라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 말씀과 은혜의 양식을 사랑으로 나눌 때, 항상 겸손한 태도로 섬기는 자세로, 양보하는 마음, 감사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마음만 있다면 무엇으로든지 남을 돕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콩 한개도 나눠 먹을 수 있습니다. 냉수 한 잔, 따스한 인사 한마디나 격려 한마디, 미소 한조각이라도 나눌 수 있습니다. 콩 한쪽을 나누든 콩 백가마를 나누든 그것은 비교대상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능력과 달란트대로 나누고 섬기는 삶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경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예수님과 부자 청년과의 대화도 있습니다.

    저는 성경의 이런 구절들을 읽으면서,

    거지 나사로를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기도 하고,

    많은 재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부자 청년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거지 나사로가 대문에 누워있었던 부자는

    왜 음부에 빠지게 되었는지,

    율법을 잘 지켰던 부자 청년은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사뭇 궁금하기도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예수님 말씀에 비추어 볼 때에 어느 누구가

    '제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겠습니다.'

    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는 연약하여 그렇게 살지 못함을 주님 아십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항상 이렇게 둘러대고 핑계하는

    우리가 아닙니까? 

    그도 아니면 '주님,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내놓고 싶지만 내놓을 것이 없으니 어떻게 합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 저에게 풍성히 주십시오,

    그러면 마음껏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겠나이다.‘ 하고

    기도합니다. 부끄럽게도 바로 저 자신이 실제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큰 교만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 자신은 마땅히 구제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제 마음대로 정해 놓았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연보의 목적을 우리가 묵상하여

    볼 때에 헌금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 사용 또한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자 청년이 어디 십일조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구제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봉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일 주일에 두 번 금식하지 않았겠습니까?

    경건 생활을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못 지킬 것이라고 포기할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 온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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