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스크랩] 정현구 목사, "땅 이용한 불로소득은 죄악"

흔이 할아버지 2005. 6. 13. 16:29
정현구 목사, "땅 이용한 불로소득은 죄악"
토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소유 개념 버리고 청지기 의식 가져야
이승규(hanseij) hanseij@newsnjoy.co.kr


정현구 목사(서울 강남구 논현동·서울영동교회)가 우리 사회 갈등 구조의 핵심에 놓여 있는 땅 문제와 관련, 불로소득자들을 향해 일갈했다. 정 목사는 하나님, 인간, 땅의 삼중관계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인간이 땅에 대한 소유욕을 버리고 청지기적 삶의 자세로 돌이켜야 한다고 꾸짖었다.

그는 5월29일 주일설교에서 '거룩한 삶과 희년의 정신'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날 설교에서, 땅을 소유해 소득 수단으로 삼는 관행을 비판하면서, 이런 불로소득은 불평등과 탐욕과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기득권층과 타협하면서 잊어버린 희년법을 회복해 희년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선지자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설교 요약문이다.

'거룩한 삶과 희년의 정신'

'열쇠가 너무 많습니다'란 제목의 수필집이 기억납니다. 제목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열쇠뭉치가 있습니다. 집 열쇠도 있고, 자동차 열쇠, 사무실 열쇠, 금고 열쇠 등 열쇠를 가지고 다니면서 열쇠의 숫자를 성공의 지표처럼 여겨진다는 쓴소리가 거기에 담겨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열쇠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인생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지난 주 뉴스에서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차이가 18배가 난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열 수 있는 열쇠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닫힌 문제들을 여는 열쇠는 없는 것일까 고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요. 최근 조계종의 한 스님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앞 뒤 다 자르고, 요점은 마음이 부처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나온 말을 한 마디로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보이는 물질의 세계를 마음보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는 불교적 세계관이 그 속에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문제가 참 중요합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문제를 결국 마음의 문제로만 귀착시켰을 때, 그 속에 삶의 진정한 해답이 있을까 이런 의구심도 생겨납니다. 물론 이와 반대로 이 세상 모든 문제를 물질적 하부구조로만 귀착시키는 것도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답이 아니었음은 공산주의 패망과 함께 입증됐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복잡한 사회의 문제를 여는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최근 레위기를 QT 본문으로 읽어가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주 소중한 열쇠를 잊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 열쇠를 소중하게 사용하지 않아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교회사를 살펴봐도 중세 초기 열쇠를 잊어버리고 제대로 사용하지 않게 되자, 이슬람이 발흥하게 됐습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립은 심각합니다. 근대교회가 이 열쇠를 잊어버린 탓에 공산주의가 생겨났고,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됐습니다. 현대사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현대교회가 열쇠를 잊어버리자 교회는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고, 사회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열쇠는 무엇입니까.

바로 희년법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삶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공동체입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다 같이 행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지만, 행복은 쉽게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순위가 잘못됐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먼저 거룩함을 추구하면 진정한 행복을 선물로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종종 이 거룩한 삶을 종교적 삶으로 국한시키곤 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삶이란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삶입니다. 즉 삶의 모든 관계가 빠짐 없이 균형 있게 제자리를 잡은 삶이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이루는 중요한 관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사람과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관계는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관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우 근원적인 관계가 하나 더 필요한데,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 관계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대단히 중요하게 회복해야 될 관계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과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가 빠지면, 삶이라고 하는 관계가 막연해지고 추상적이 되어 버립니다.

거룩한 삶이란 하나님과 인간과 땅의 삼중관계가 온전히 회복된 관계라고 보면 됩니다. 실제로 사람의 삶을 가만히 살펴보면, 이 관계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생겨납니다. 우리는 개인주의적인 사회를 삽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다. 물질주의 사회에서는 사람과 물질 사이에 문제가 생겨 물질이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우리를 지배해왔던 생각은 사람이 땅의 주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즉 인간이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이 잘못된 생각이 수많은 전쟁과 불평등을 낳게 됐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는 이 삼중관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총체적 회복의 삶을 가리켜 희년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년의 삶을 살라고 초청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희년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인간의 회복,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땅과의 관계의 회복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사람과 땅의 관계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요. 레위기 25장이 답을 가르쳐줍니다. 성경은 인간과 땅의 관계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땅을 소유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지만, 성경은 인간이 땅을 소유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합니다. 안식일 계명을 가르치는 것은 6일 동안 일하고 하루는 쉬라는 것만이 아닙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우리가 사는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에 기초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6일 동안 노동하셔서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 7일째 쉬는 것이 맞지만, 인간은 6일째 창조됐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노동하셔서 만든 천지를 그대로 삶의 터전으로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안식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삶의 터전으로 주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의 계명은 창조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창조세계에 기초해서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은 모든 동물의 주인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조차 인간이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인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이야기가 땅에도 적용됩니다. 레위기 25장2절에 보면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그들이 노력하고 싸워서 쟁취해 얻은 땅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입니다.

실제로 창조 기사를 봐도 인간은 결코 땅의 소유주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땅의 주인이 아니고 땅의 일부분입니다. 실제 인간이 죽고 나면 땅을 소유했다고 하는 인간이 땅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땅을 소유한 것이 아니고, 땅이 인간을 소유한 것이 됩니다. 인간이 땅을 소유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일 뿐이지, 진짜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삶의 터전으로 선물로 주신 것인데, 이것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고, 은총의 선물로 주신 관점을 잃어버리면, 거기에서부터 왜곡된 관계가 형성되고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땅을 물질주의적 세속적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성경은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은 무엇입니까. 땅은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신 선물입니다. 이 사실을 깊이 깨닫는 것이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인간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면, 인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우리는 땅에서 잠시 살도록 허락 받은 임시거주자일 뿐입니다. 안식년과 희년제도는 인간은 나그네라고 하는 것을 반복해서 가르쳐줍니다. 희년제도는 50년마다 사고 판 토지, 노예 등을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이 나그네라는 기본정신을 망각하는 데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봐도 많은 문제는 이 정신을 잃어버렸을 때 나왔습니다. 그때도 절대빈곤층이 존재했는데, 성경은 그 핵심 원인을 어디서 찾습니까. 바로 땅의 문제에서 늘 찾았습니다. 우리 사회를 잘 들여다봅시다.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정치경제, 빈부격차, 노사갈등 문제 등 복잡한 문제들로 쌓여 있습니다.

해법이 어디 있을까요. 정직하게 살펴보면 그 뒤에는 땅의 문제가 있습니다. 토지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전문사학자의 분석을 통해 제시하면 더욱 설득력이 있겠지만, 한국 분단의 뒤에는 땅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북한은 1946년 토지개혁을 해 국고로 환수했습니다. 한국은 1950년대 부분적이긴 하지만 농지개혁을 했습니다. 남쪽의 농지개혁은 불완전했지만, 농지개혁마저 없었다면 6·25 때 많은 소작인들이 국군 편에 설 수 있었을까요.

우리나라 현실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욱 잘 살기 위해 경제성장 지표를 높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 경제성장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사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절대빈곤층에게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경제성장 지표가 올라가도 여전히 절대빈곤층은 있고,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사회문제는 커져만 갑니다. 이 문제 뒤에는 땅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땅 문제는 제도 자체에 문제보다 땅을 소유해 소득의 수단을 삼는 관행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땅으로 인해 생기는 이득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건물을 지어 그 건물로 생산과 소비 소득을 발생하는 소득 지대나 임대료와 같은 이득. 이것은 토지를 사용함으로 생기는 소득입니다. 토지를 잘 사용함으로 생기는 부가가치인 것입니다. 정당한 소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토지를 갖고 있음으로 토지의 가격상승이 가져다주는 자본 이득은 성경이 금하고 있습니다. 그릇된 이득이고 불의한 구조인 것입니다.

단순히 토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토지 상승분의 막대한 이득을 혼자서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봐서도 실제적인 이득이 하나도 창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의 돈이 토지를 소유한 사람의 지갑 속으로 고스란히 이동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부동산 투기는 한국 경제적으로도 옳지 않지만, 성경이 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재테크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투기적 의도를 갖지 않는 재테크를 그리스도인들이 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수기 35장33절 말씀은 이스라엘 사회를 향한 경고성 발언입니다. 모든 사회에 해당되는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땅이 피로 더럽힘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요. 땅의 소유 자체가 수익의 주요한 원천이 되는 사회에서는 땅을 소유하기 때문에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고, 단순히 땅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를 박탈당하는 사람이 반드시 존재합니다. 그러면 빼앗긴 자들은 그로 인해 억울함과 분노를 갖게 되는데, 그들의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 바로 땅을 더럽히는 피라는 것입니다.

이런 피가 그 사회에 넘치게 되면 결국 그 사회에서는 그 피를 흘리게 한 자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 역사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는 이 땅의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이 땅을 건강하게 만들고, 또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정신을 따라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땅에 대해 나그네입니다. 이와 함께 땅에 대한 청지기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결국 소유한 것을 버리고 가는 허무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청지기란 소유권은 없지만, 땅의 사용권을 부여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땅을 잘 사용해서 사용함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많이 창출해 부가가치를 통해서 사회를 살찌우게 해야 되고, 그렇게 부자가 된 사람은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모순이 많은 자본주의 사회는 자신이 나그네라는 것을 잊고 살고, 공산주의의 문제는 청지기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은 노력하므로 생긴 이득을 취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건강한 욕구입니다.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제도 속에서는 건강한 재화를 소유하려는 욕구적 노력이 병든 탐욕으로 얼마든지 변질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경은 욕망의 브레이크를 걸고 또 건강한 욕구를 촉구하기 위해 우리를 이 땅의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땅에서 경제적 효율성이 약해서라기보다 사람들의 욕망이 더 문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 역시 땅입니다. 남한 식으로 남한 사람들이 땅을 소유의 대상으로 삼으면, 통일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북한 사람들은 거지가 됩니다. 소유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땅의 사용가치를 높이려는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희년은 중요한 열쇠입니다. 희년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한 잘 사는 사람들은 좋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눈물과 억울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1,800년 동안 희년법을 잊고 있었습니다. 희년법을 잊어버린 것은 교리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회로 만들어가야 하는데, 기득권자들과 타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동안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잃어버려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하는 원인이 됐습니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이득까지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에서조차 희년법이 사라진다면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땅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될 거룩한 삶은 땅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출처 :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
글쓴이 : 풍자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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