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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무서운 죄입니다 (행 10:9-16) - 이한규 목사

흔이 할아버지 2009. 9. 10. 08:14

본문 말씀 : 사도행전 10장 9-16절

(9절)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절)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절)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절)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절)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절)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절)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절)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 편견의 죄악성 >

 1992년 봄, LA 폭동에서 한인들이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이유는 한국 상인에 대한 흑인들의 나쁜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편견이 생긴 이유는 한인들도 흑인들에 대해 편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인들이 흑인들을 얼마나 무시합니까?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인 80% 이상이 흑인 지역에서 사업합니다. 결국 흑인 때문에 먹고사는 한인들이 흑인들을 깜둥이라고 무시하니까 흑인들도 기분이 좋겠습니까? 결국 편견이 문제였습니다.

 죄 같지 않지만 의외로 무서운 죄가 바로 ‘편견’입니다. 편견은 사람의 죄 중에 제일 크고 무서운 죄에 속합니다. 편견이 특히 무서운 이유는 큰 해악을 끼치는데도 그 해악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인간 문제의 90% 이상이 지금 당장 해결된다.”

 사람이 겪는 수많은 문제는 편견에서 생깁니다. 수십만 명을 죽이는 사건들의 원인은 거의 예외 없이 편견입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사건에서 공산당은 안경을 쓰면 지식인이라고 무조건 죽였고, 손에 굳은살이 없으면 반동이라고 무조건 죽였습니다. 얼마나 편견이 무섭습니까? 편견은 마음속에 깊이 침투해 자신도 모르게 삶의 일부가 됩니다. 그래서 편견을 고치기는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힘써 편견을 버려야 하나님의 진국 은혜가 임합니다.

<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십시오 >

 어느 날, 버나드 쇼가 영국 사회를 관찰하다가 미켈란젤로 마니아들은 로뎅을 무조건 싫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편견을 깨려고 어느 날 그가 파티를 열고 미켈란젤로 마니아들을 초청했습니다. 만찬을 마칠 때쯤 버나드 쇼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제가 귀한 작품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작품 하나를 내걸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멋있지요? 이것은 로뎅의 작품입니다.”

 곧 혹독한 비평이 쏟아졌습니다. “색깔이 왜 저 모양이냐! 구도가 왜 저래? 저것도 작품인가?” 한참 난도질할 때 버나드 쇼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했습니다. “여러분! 제 실수로 그만 작품을 잘못 갖고 나왔습니다. 이것은 로뎅의 작품이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입니다.” 그때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처럼 편견은 사실을 사실로 보지 못하게 만들고, 상대방을 이유 없이 미워하게 만듭니다.

 유대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이방인들을 미워하고 경멸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 해석서인 미쉬나는 이방 여인의 출산을 돕지 말라고 하고, 유대 여인의 출산을 이방인이 돕지 못하게 했습니다. 짐승에게 아기를 맡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잘못된 가르침을 정당화하니 얼마나 편견이 무섭습니까? 그처럼 이방인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무조건 무시했던 교만으로 결국 이스라엘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습니다. 편견의 결말은 자신의 파멸뿐입니다.

 어떻게 편견을 치유합니까?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환상 중에 베드로에게 부정한 음식을 먹으라는 하늘의 음성이 들렸을 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하나님! 저는 평생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런 것들을 먹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즉 사람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을 볼 때 부모나 남들이 그를 어떻게 보느냐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야로 그를 보십시오. 과거에 형편없는 사람이었어도 그가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지금 미운 사람이 생각납니까? 그로부터 직접 고통을 당했다면 용서하는 마음을 구하시고, 까닭 없이 미워한다면 편견을 버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편견을 버릴 때 극적인 반전의 축복도 뒤따를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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