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정직의 함정

흔이 할아버지 2006. 2. 23. 10:18

정직의 함정(3) 김동호목사 2005-02-27

 

마 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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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직의 함정에 대하여 세 번째로 말씀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말씀이 아니라 정직의 두 번째 함정인 ‘교만’에 대하여 계속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교만의 끝은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 한 이후 끊임없이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설픈 정직으로 교만하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이 됩니다. 하나님이 되어 인간을 판단하고 심판하게 됩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정직의 함정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다 잘 아는 말씀입니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번역이 잘 못 되었습니다. 그 말씀은 ‘비판’이라기보다는 ‘심판’ 또는 ‘판단’이라는 말로 번역을 하여야 뜻이 바로 통하는 말씀입니다.

제가 찾아 본 영어 성경은 모두 그 비판이라는 말을 'judge'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판이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판단 또는 심판이라고 번역을 하여야 옳습니다. 우리는 비판과 판단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비판과 판단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비판은 judgement가 아니라 critic 입니다. judgement와 critic은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critic은 해야 하는 것이고, judgement는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판과 판단을 구별하지 못하여,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번역을 해 놓은 것입니다.

비판(critic)은 있어야만 합니다. 비판이 없으면 모든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과 같은 독재자가 되고, 모든 나라와 교회와 집단과 사회는 북한과 같이 됩니다. 북한이 저토록 비참한 사회가 된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사회에 건전하고 바른 비판이 실종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건강치 못한 교회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도 교회 안에 건전한 비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전한 비판이 사라져가고 있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층이 비판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사람들이 바른 비판에 서툴기 때문입니다. 비판한다고 하면서 대부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비난하기 때문입니다. 심판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비판과 판단을 잘 구별하지 못하여,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비판까지 못하게 하고, 비판이 있어야 한다면 함부로 판단까지 합니다. 나라의 문제도 여기에 있으며, 교회의 문제도 여기에 있고, 심지어는 가정의 문제와 자녀교육의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의 선친은 탁월한 면이 있으셨습니다. 저의 선친은 제가 잘못하면 때리셨습니다. 제가 어려서 가장 많이들은 말 중에 하나는 ‘하나가 아니라 반쪽이라도 안 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저의 선친은 제가 외아들이어서 버릇없게 되는 것을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습니다.

매를 들어 때리실 때 저의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매를 맞을 때에도 아버지가 저를 비난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저의 선친은 매를 드실 때에 한번도 저를 비난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는 너보다 더 했다는 말씀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부모들이 자식에게 매를 들 때 흔히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는 자식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흥분하여 대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너는 어떻게 되먹은 놈이 밤낮 그 모양이냐?’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 것은 사실이나 밤낮 그런 것은 아닌데 부모는 흥분하여 아이를 밤낮 그 모양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잘못한 일에 대하여 비판하지 아니하고, 아예 되먹기를 잘못 되먹은 놈으로 비난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와 정직의 치명적인 함정은 비난과 판단입니다. 정직의 함정에 빠진 사람은, 그것도 교만이라고 하는 함정에 빠진 사람은 사람을, 그것도 모든 사람을 다 형편없는 사람으로, 되먹지 못한 사람으로, 쓰레기 같은 사람으로 판단하고(judge), 심판하는 것입니다.

영락교회에 있을 때 교인들이 한경직 목사님을 존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년을 지내면서 한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에게 한 목사님 외에는 목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목사님을 존경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목사는 목사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한 경우 다른 목사는 다 삯꾼 목사 같아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교회에 게시판 토론방에 어느 목사님에 대하여 비난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자신은 그것을 비판이라고 생각하였겠지만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비판이 아닌 비난이었습니다. 옳고 그른 것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저는 그 목사님 편이 아니라 그 글을 쓴 사람 편입니다. 저는 그 글을 올린 사람의 입장이 옳고, 비난을 받고 있는 목사님의 입장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글을 올린 사람은 비판을 하다가 흥분하여 도를 넘었습니다. 비판이 비난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글을 ‘야 이 아무개 목사 새끼야’로 맺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그 글을 삭제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교회 게시판은 웬만해서는 글을 삭제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에 보면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살펴보면 비판은 하되 (옳다 아니다 하라) 판단과 비난은 하지 말라(이에서 지나는 것은)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37절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아무개 목사님은 그 일에 대하여 옳지 않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옳지 않은 일에 대하여 비판하다가 지나쳐서 ‘야 이 아무개 목사 새끼야’라고 욕을 한 사람은 악한 것이었습니다. 의와 정직의 함정은 잘못하면 그 의와 정직이 곧바로 악한 것으로 변모한다는 것입니다.

비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정직하려고 힘쓰다가 조금 남보다 정직하게 되었다고 모든 사람을 다 우습게 여기고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것은, 거짓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눈에 있는 들보를 빼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에 저는 설교를 통하여 매사를 십자가를 통하여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자신을 보면, 자신의 죄가 보입니다. 자신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인 것이 보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타인을 보면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귀히 여기고 사랑하시는가가 보입니다.

정직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정직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있는 최근에도 저는 정직에 대한 내적 갈등이 많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 미국과 독일을 다녀왔습니다. 미국에서는 교회 집회를 하였고, 독일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코스타 집회가 열렸습니다. 엄밀히 이야기하면 미국 집회는 사적인 집회였고, 독일 집회는 공적인 집회였습니다. 미국 집회를 위한 비행기 삯은 제가 내는 것이 옳고, 독일 집회를 위한 비행기 삯은 교회가 내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비행 일정을 함께 잡으면서 모든 삯을 다 교회재정으로 지불하였습니다.

그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독일에서 집회를 하면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을 미리 하지 못하고 뒤 늦게야 하게 되었다는 것도 부끄럽지만, 더 큰 문제는 그것을 구별하여 떼는 것이 쉽지 않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정직하게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 산다는 것은 한도 끝도 없어 보이는 목표와 같습니다.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저는 깨닫습니다. 발버둥질 치는 것일 뿐 결국은 완전해 질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가다가 넘어지고, 가다가 넘어져도 또 일어서서 가보겠다는 것일 뿐 넘어지지 않을 자신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자신을 바라보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비판은 할 수 있겠으나, 교만하여져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고 비난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견디기 어려워하실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눈에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만 탓하는, 그리고 함부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사람을 향하여 하나님은 ‘이 외식하는 자여’라고 본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정직에 도전하십시다. 그러나 함정에 빠지지는 마십시다. 정직하게 살다가 이 세상에서 바보가 되고,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식이 통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물려주기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며 사십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혹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그렇게 살게 된다고 할지라도 교만이라고 하는 함정에 빠져 바리새인처럼 되지 마십시다. 형제를 함부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심판하는 자리에 빠지지 마십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함께 붙잡고 온전한 구원을 이루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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