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24주, 이사야 1 정답 및 해설
정답
① | ① | ⑥ | ① | ⑪ | ①③④ | ⑯ | ④ |
② | ① | ⑦ | 자유정답 | ⑫ | 싸매 고치 |
⑰ | 이리 양 |
③ | ① | ⑧ | 막대기 | ⑬ | ①∼④ | ⑱ | ①③④ |
④ | ①∼④ | ⑨ | ① ② | ⑭ | ①②③ | ⑲ | ② |
⑤ | ①②③ | ⑩ | ②③④ | ⑮ | 벽 통곡 |
⑳ | ③ |
해설
1.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에 웃시야, 요담, 아하스와 히스기야까지 네 왕의 시대에 걸쳐 하나님의 선지자로 약 60년 간 활약하다 전승에 의하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왕 때에 톱으로 켜서 (히11:37) 순교를 당하였다고 전해집니다.
3. 웃시야 왕이 죽기 전에 이사야와 남왕국 백성들이 드린 기도는 문둥병에 걸린 웃시야 왕이 하루 속히 건강을 되찾아서 남왕국을 이전처럼 부국강병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젊은 이사야의 영웅이었던 웃시야 왕이 죽고말자 허탈한 마음으로 성전을 찾은 이사야에게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네가 아직도 웃시야를 의지하려 하느냐? 네가 의지하여야 할 것은 오직 나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듯이 말입니다.
4. 아하스는 재위 기간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외세를 더 의존하였으며, 배교(背敎)와 가증한 우상 숭배 등으로 유다의 부패를 촉진시킨 왕입니다. 특히 아하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가증한 풍습을 좇아 자기 아들을 산 채로 불살라 우상(몰록)에게 제물로 바치는가 하면(왕하16:3-4, 대하28:2-4), 우상을 제조하고(사2:8), 우상의 제단을 만들어 제사 드렸으며(왕하16:11-14), 다메섹(아람)의 신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였습니다(대하28:22-23). 그리고 성전 기구를 파괴하고 성전 문을 닫았으며, 유다의 각 성읍마다 산당을 세우고 푸른 나무 아래서 분향한 대표적인 악한 왕이었습니다(대하28:22-25).
7. 처음 예수를 믿어보겠다고 교회에 나오신 분들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물질계에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물질적 실증이 없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을 오래 믿는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한 분들도 상당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진솔하고 가난한 간절함이 있을 때와 하나님의 긍휼로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현현하여 주실 때 비로소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8. 아람의 르신 왕과 북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에 웃시야의 손자 아하스는 마음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은 아하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며 징조를 구하라 하십니다.
12.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날은 조금이 아닌 완전한 회복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5. 남유다의 선한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역경에 처하게 된 때가 있었습니다. 바깥으로는 앗수르의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다의 많은 성읍들을 점령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쳐주셨습니다. 바로 그 때에 히스기야는 죽을병에 걸렸고,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줍니다. 얼마나 히스기야에게 절망적인 말이었겠습니까? 이때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벽(壁)]에는 두 가지 뜻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앞길을 가로막아버리는 엄청난 [장벽(障壁)]의 뜻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는 성벽(城壁)의 뜻입니다. 이제는 어쩔 수 없구나, 이게 끝인가 보다 하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의 장벽(障壁) 앞에 통곡하면서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께서 그 절망적인 장벽(障壁)을 여러분을 보호하시는 성벽(城壁)으로 바꾸어 주시는 줄 믿습니다.
19. 이사야 시대 앗수르가 해변의 아스돗을 함락시키고 앗수르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자, 남유다는 모압, 에돔, 애굽, 구스 등과 동맹을 맺어 앗수르를 쫓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러한 인본주의(人本主義) 동맹이 여호와를 거역하는 짓이라며 여러 차례 동맹에 의지하려는 유다 왕을 견책하였습니다. (사22:28, 29:1-16, 30:8-17, 32:9). 여호와께서는 남유다에게 오직 여호와만 의지하라고 하시면서 이사야에게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 동안 다니라고 하셨는데, 이는 바로 전쟁 포로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선지자의 행동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을 선지자적(先知者的) 예언행위(豫言行爲)라고 합니다. 인본주의적인 동맹에 의지하면 전쟁에 지고 포로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쉽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배려하신 시청각 교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