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말씀동행 정답 및 해설

2022-14주 열왕기하 문제 정답 및 해설

흔이 할아버지 2022. 4. 13. 14:54

 

정답

요시야 ①②④ ①③④
①②③ ①②③
게하시
②③④ ①②③
②③④

해설

 

1. 엘리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불입니다. 갈멜산우상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하늘로부터 제물에 내려졌던 불과,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갈 때 불 수레와 불 말들에 대한 잔상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겠지요.

 

성경을 읽는 많은 분들이 왜 50부장들과 부하들이 무슨 이유로 불에 죽었는지 의아해 합니다, 출제자도 마찬가지 이었죠. 13:2에 보면 해 받은 갈릴리인들이 다른 갈릴리 사람보다 더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예수님이 반문하시죠. 죽은 사람들이라고 죄가 더 많은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 사람들은 죽어야 했을까요? 악한 아하시야의 완악한 명령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그들 모두의 죄가 워낙 커 죽어 마땅했을까요? 그렇다고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소모품처럼 죽임을 당했으리라고는 절대로 없다고 믿습니다. 인명을 중시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는 믿으니까요. 이 부분은 아마 인간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닐 듯합니다. 우리의 영역 바깥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남겨두어야만 한다고 믿습니다.

 

2. 성경을 자세히 읽지 않으면 혼동이 오는 문제입니다. “주의 선지 엘리야 병거 타고 하늘에는 찬송가 199장 나의 사랑하는 책의 2절 가사입니다. 개정개역판이 나오면서 주의 선지 엘리야 바람 타고 하늘에로 바뀌었습니다. 왕하2:11에는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8.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는 난간에서 떨어져 병에 걸리자 블레셋 바알세붑에게 자신의 병이 낫겠나 물어보려고 사자를 보냈습니다.

 

아하시야는 엘리야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함께 살고 있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여로보암의 송아지 우상과 모친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을 섬겼습니다. (왕상22:52-53).

 

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건강 이상은 그 국가의 최고기밀에 속했습니다. 왕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한편으로는 외침을 걱정하여야 했고, 북이스라엘 같이 왕조가 자주 뒤바뀌는 나라에서는 내부 반란을 걱정하여야 했을 것입니다. 즉 북이스라엘 안에서는 공개적으로 물어볼 데가 없었을 테죠?

 

아하시야를 이해할 수 없는 점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병을 치료할 수 있나?”라고 묻지 않고 이 병이 낫겠나?”라고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본인의 병이 스스로 어렵다고 생각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연히 발생한 듯이 보이는 사고로 병을 얻은 아하시야는 사고의 원인부터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 사고는 바알을 숭배했던 그 아비(아합)와 어미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했던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비롯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겸손한 자세로 회개하며 병이 낫기를 기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방신을 찾았습니다.

 

현대의 우리 주위에도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하나도 결코 하나님의 경영 안에 있지 않는 일이란 없습니다. 아하시야에게 일어난 사고도, 엘리야에게 보낸 부하들에게 불이 내려 죽은 것도, 세월호로 많은 생명들이 죽은 것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한국의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경제적인 패닉 상태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기도하여야 합니다. 먼저 우리 믿는 자들이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함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9. 유대인들 이름은 대개 그 일생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선지자의 이름은 일생의 사역과 밀접한 연결 관계를 지니고 있어 선지자의 이름의 뜻이 바로 그 선지자의 사역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 엘리야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 엘리사 (참고: 이사 야 선지자 이름의 뜻도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세우신다 : 예레미야

하나님이 도우신다 : 에스라

 

13. 선지자는 물론 선지자의 제자들이 땅에 매여 마땅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야 할 자리를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모습의 표상이 바로 게하시입니다.

 

15. 왕하2:12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엘리사가 엘리야를 향하여 애타게 부르짖었던 말입니다. 이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승천을 목도함으로 그가 요구하였던 갑절의 영력을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믿은 감사의 외침이었습니다. 엘리야를 이스라엘의 마병과 병거라고 부른 것은 엘리야가 당시 이스라엘을 지키는 최고로 강력한 무기인 병거와 같은 능력의 소유자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16. 여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의 군사, 경제적인 기준으로만 본다면 가장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당시 국제적으로 앗수르의 남방정책이 주춤하였던 시대를 틈타 여로보암 2세는 영토를 솔로몬 시대의 유다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회복하였던 왕입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무역에 힘써 북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풍요는 사치와 방종으로 흘렀고 이는 북이스라엘을 쇠락의 길로 내몰았습니다.

 

여로보암 2세의 시대는 남유다 웃시야 왕의 시대와 겹치는데 남유다 역시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던 시대이었습니다.

 

20. 히스기야는 일영표의 그림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쉽다고 생각하고, 거꾸로 10도를 뒤로 물러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대하32:31에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절단을 보낸 목적 중의 하나이었습니다. 사절단의 명분은 죽을병에서 일어난 히스기야에게 축하 사절단이었지만, 그들은 어떻게 약소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는 지와 그 땅에서 일어난 이적이 궁금하여 알아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는 일영표의 그림자가 뒤로 물러남으로 시간이 길어졌다는 사실을 바벨론에서도 인지를 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장차 남유다를 침략하기 위한 정탐의 목적도 당연히 있었을 것입니다. 바벨론 사절단의 질문에 히스기야는 이스라엘의 모든 보물을 보여주며 자랑할 것이 아니라 앗수르의 185천의 군사가 어떻게 하루 밤에 몰살당하고 또 시간이 길어지게된 하나님의 이적을 간증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아마 바벨론은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워서 이스라엘을 넘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엉뚱한 히스기야의 답변에 하나님은 히스기야를 떠났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