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퀴즈 해설

2018-29호 에스겔서 문제 정답 및 해설

흔이 할아버지 2018. 8. 8. 17:25


2018-29호. 7월 22일

말씀동행 2018-29호 정답지



번호

정 답

번호

정 답

번호

정 답

1

①③④

11

21

2

12

22

피투성이

3

13

성소, 늙은

23

④ 시드기야

4

①②③④

14

24

악인, 돌이켜

5

파수꾼, 말

15

영광

25

①②③

6

①②④

16

②④

26

이스라엘

7

①②③④

17

백성, 하나님

27

8

②③④

18

28

④ 남유다

9

①②③

19

더디지

29

잊었고, 등 뒤

10

20

①②③④⑤⑥

30

② 아내


3. 바벨론은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에 승리한 후 남유다에 여호야김을 왕으로 꼭두각시 정권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이 친애굽 정책을 펴자 여호야김을 죽이고 다시 침략하여그 아들 여호야긴을 세웁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불과 몇 달이 못되어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때에 에스겔은 남유다의 석공, 목공, 대장장이 등 건설기능공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가(BC597년경 바벨론 2차 포로) 그발 강가에서 바벨론 왕의 수중 궁궐 건설현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됩니다. 남유다가 멸망당하지 않았더라면 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에스겔은 30세가 되면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조국의 원수인 바벨론 왕의 궁궐을 짓고 있는 에스겔은 얼마나 절망에 빠져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셨습니까? 이게 무엇입니까?”라고 기도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포로로 잡혀가 후 5년 동안 질곡에 빠져있었던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에스겔을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남유다가 아주 망한 BC586년 이전의 일입니다. 즉 에스겔서의 남유다 멸망에 대한 예언은 남유다가 실제로 아주 망하기 6-7년 이전에 선포된 것이며 이는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으로 선포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이 거한다는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크 구름이 오는 가운데 그 속에서 에스겔은 네 생물의 형상을 보게 되는데 이들은 하나님이 부리시는 그룹들(천사들)입니다. 그룹의 얼굴은 네 가지를 상징하는 생물과 같았습니다.

① 사람 : 사람은 지식과 지혜를 갖춘 인격을 상징

② 사자 : 가장 용감하고 힘이 센 동물을 상징

③ 소 : 말없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동물을 상징

④ 독수리 : 하늘을 나르는 신속함을 상징

그리고 날개가 다 연하였으며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였다고 하는 것은 쉬지않고 일하는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1:4-14절 말씀은 하나님이 에스겔을 버려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쉬지않고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은 나를 내버리셨든지 아니면 잊어버리셨든지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하나님은 그 순간에도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신다.


7.  ① 바벨론의 예루살렘 포위 (4:1-3)    ② 포로 기간 (4:4-8)

    ③ 예루살렘에 닥칠 기근 (4:9-17)     ④ 예루살렘의 철저한 멸망 (5:1-4)


8. 레위기 말씀은 출애굽 직후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잊고 우상을 숭배하면 벌을 내리시겠다는 말씀으로 대략 BC 1450년에 주신 말씀입니다. 남유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BC586년입니다. 즉 말씀이 선포된지 900년이 지나서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성취하셨습니다, 지키셨습니다.

그 9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하지 않은 적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즉각 벌을 내리지 않으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번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이 전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방법으로 물리쳐 주셨습니다. 그런 위기를 몇 번 겪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다른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지키시기 때문에 결코 이방인에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그릇된 낙관적인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도님은 혹시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안이한 믿음을 갖고 계시지는 않으시겠죠?


11. 레위기 26장에서 말씀하신 후 900년 동안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죄악을 참으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시지 않으시고 그 마지막 날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날은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요란한 날, 산에서 즐거이 부르는 날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기다렸던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이 무엇을 하는 날이 아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하시는 날이었습니다. 지난 역사에 하나님의 혼자 역사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살리시고 은혜를 부어주신 날이 몇 번 있었음을 그들은 기억하고 또 그런 날이 다시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역사의 그런 날은:

① 출애굽시 홍해를 건넌 일 ② 가나안 입성시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일

③ 기드온의 300 용사로 30만을 물리친 일 ④ 앗수르가 침략했을 때 18만5천명이 전멸

그러나 이번의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이 바라던 은혜의 날이 아닌 심판의 날이었습니다.


12. 예루살렘의 우상숭배를 막아야하는 책임 큰 책임은 제사장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제사장 24반차의 우두머리인 제사장 25명조차 태양신에게 예배하고 있는 모습을 여호와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할 에스겔에게 왜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시는지를 깨닫게 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14. 표는 히브리어의 마지막 자음 “타우”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혹자는 고대 “타우”의 형태는 “+“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이 표는 뒤이어 살육을 명령받고 나가는 천사들이 쉽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명료한 표시임은 확실합니다. 출애굽시 유월절 문지방과 인방에 바른 어린양의 피와 유사하며 (출12:21-29), 요한계시록 구원받을 자의 이마에 표시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계7:1-8)


20. ① 13:2 자기 마음대로 예언 ② 13:3 하나님의 계시 없이 예언

③ 13:6 허탄한 묵시와 점괘를 말함 ④ 13:6,7 하나님의 말씀을 사칭

⑤ 13:10 평강이 없어도 평강이 있다고 거짓으로 백성을 유혹

⑥ 13:10,16 죄악으로 인한 경고와 회개를 촉구하지 않는다


22.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셨을 때에 이스라엘은 그 주변 열강과 비교하여 뛰어난 그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갓 태어나 버려진 피투성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 피투성이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부르셔서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시고 열방에 복의 통로가 되라 하셨습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고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니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크셨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대로 심판해버리지 않으시고 애타는 사람으로 에스겔을 통하여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가 주변 열강에 비교하여 나은 점이 무엇이 있습니까? 육이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갓 태어나 피투성이로 버려진 이스라엘만도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만원을 바라보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배곯던 나라가 조금 배불러졌다고 하나님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독재에 맞서서 “자유와 민주“를 쟁취한 우리나라가 어떻게 일인독재주의 북한에게는 인권이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쩔쩔매고 있습니까?


26. 이 본문은 하나님이 남유다의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은 자“들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는데 그 남은 자들마저도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에 모두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는 말씀입니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육신은 교회 공동체의 신실한 일원인 듯하지만, 그렇지 못한 거짓 성도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이어서 39절 말씀에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다시는 예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육적으로만 교회에 출석하고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29. 네 등 뒤에 버렸은즉 : 하나님을 등 뒤로 버렸다는 말씀은 언제 어떤 일에 부딪쳐도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아야 하는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았다는 말씀이고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죄악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계속하여 마음을 두드리는 가운데 한 주간을 살았습니다. 주님, 주님을 등 뒤에 두고 살았습니다, 말씀을 보고서도 주님을 선뜻 앞으로 모시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회개힙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