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 - 이천우 목사
오늘날 우리네 교계를 보면 안식년이란 제도를 목회에 적용시키는 것을 공공연하게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이는 성경의 무지에서 갖는 발상입니다. 안식년이란 제도는 당연히 없습니다.
안식년이란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절기의 하나인데 이는 그리스도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으로 구약에서는 그리스도의 모형의 역할을 하였으나 신약에서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절기가 존재했던 목적을 다 이루심으로해서 제사와 성전과 함께 없어진 것입니다.
안식년이 제사와 성전과 함께 없어진 것은 안식년이 이스라엘에 주신 절기의 하나로 제사와 관련해서 주신 것이기에 그리고 제사는 절기를 좇아서 성전에서 행하게 하신 것이기에 제사가 지닌 율법의 목적을 다 이루어졌을 때 이 제사와 함께 따라다니게 된 절기와 성전 제도도 그 존재 목적이 함께 다 이루어졌기 때문에 함께 없어진 것입니다.
구약의 절기는 안식일을 비롯하여서 안식월 유월절 칠칠절 수장절 대속죄일 희년 등의 절기에서 제사가 지속적으로 행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제사의 지킴과 그 보존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절기를 좇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에서 제사에 담아 주신 속죄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죄를 심판하는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절기를 좇아서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죄인을 속죄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매년 절기를 지켜야 하고 그래서 그때마다 많은 짐승이 희생되는 것이 그러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좇아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게 하는 것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저주의 진노로 죽음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악한 죄인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하셨으며 그래서 또한 속죄의 제사를 통해서 단번에 속죄를 해주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와 절기와 성전은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습니다. 이때 그리스도, 곧 히브리어의 표현인 메시야는 약속의 자손으로 언약되어져 왔습니다. 이 그리스도를 모형하는 것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보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합니다만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제사와 절기와 성전은 서로 상호 관련 속에서 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속죄의 사역과 이로 인해서 있게 하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두시고 누리게 하실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안식년의 절기를 주신 데는 그 까닭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안식년의 절기를 주신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시는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을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기업으로 받아 경작하게 될 것인데 매 칠년마다 땅을 쉬게 하여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기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땅을 쉬게 하였는데 저절로 자란 곡식과 과일에 대해서는 일체 손을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땅의 주인을 비롯해서 그들의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나그네와 기르는 가축과 들짐승이 그 땅에서 나는 소출로 먹고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안식년의 절기는 주인의 땅을 쉬게 하는 것을 통해서 그해에 거기에서 얻게 하는 소출을 가난으로 인해서 땅을 담보로 잡고 심지어는 빚으로 종이 되어 있는 자들을 비롯하여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자비의 배려를 베풂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심을 알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생명의 주로 섬겨 다만 하나님만을 경외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참 평안을 누립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나라)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는 한에는 평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참 평안은 언약을 통해서 약속으로 주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의 죄악을 담당하여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희생으로 드려 헌신제물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저주의 진노에서 구원하심으로 정죄와 심판의 율법의 매임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여준 것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으로 세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보인 믿음의 지체들 간에 가진 공동체 생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온세상에 선양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구속함을 받은 우리는 말입니다. 안식년을 비롯하여서 구약에 존재했던 모든 절기가 목적하고 있고 지니고 있는 그 의미를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히 누리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입니다.
그러한 절기 안식년을 목사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 목회에 적용하여 여전히 유효한 절기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여전히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안식년에는 쉬고 그 1년을 유학을 하느니 이런 저런 것을 하고자 한다느니 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할 분으로 계셔야 할 것입니다. 게다가 안식년을 비롯하여서 희년 등 절기의 존재 목적과 그 정신을 이런 식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만들어가기에 자유신학이 태동하였고 해방신학이니 세속신학이 등장하여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해방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활용하고 있는 판입니다.
안식년은 과연 지금도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미 절기와 성전과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폐지된 의식법인 안식년을 목회자가 자신들 마음대로 1년을 활용하기 위해서 자기들 식의 절기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 안식년 제도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안식년을 그런 식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대체 희년은 어떤 식으로 삼아나갈 것입니까? 희년은 50년째 되는 해에 맞이하는 것이며 이때에는 토지도 원주인에게 다 돌려주고 종 되었던 남종과 여종도 다 원래의 자유인으로 회복시켜주어야 할 터인데 말이죠.
어디 안식년과 희년만이겠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사실 1년 전체를 절기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인데 안식일을 비롯하여서 모든 절기를 그런 식으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왜 목회자에게만 안식년을 적용시킵니까? 님이 의문을 품은 대로 모든 성도에게 공히 적용시켜야 옳지 않겠습니까? 안식년,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과연 지금도 있는 것이겠습니까? 이미 절기와 성전과 함께 그리스도를 통해서 페지된 의식법인 안식년을 목회자가 자신들 마음대로 1년을 활용하기 위해서 자기들 식의 절기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안식년을 비롯한 각 절기에 대해서는 절기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것이 왜 존재해야만 했는지를 비롯해서 율법에서 이 절기가 어떤 성격의 것인지 그래서 그리스도를 어떻게 모형하고 있는지 절기의 본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나가시는 것인지 등등 결코 적지 않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절기 하나 하나에 대해서 말이죠.
그러나 여기에서는 이 정도의 답변을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언젠가 보다 자세한 설명을 드릴 수 있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면 그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좀더 구체적으로 기술하여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주의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