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위한 고민
수도자의 청빈은 무능력한 탓일까 - 당당뉴스에서
흔이 할아버지
2006. 10. 25. 10:00
수도자의 청빈은 무능력한 탓일까? | ||||||||||||
항의 전화를 받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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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 paulhuh@naver.com [조회수 : 461] | ||||||||||||
항의 전화를 받고 이런 저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실명을 거론해서 교인들이 힘들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교회의 실명을 익명으로 바꾸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인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그리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않을 때 주님이 나를 찾으셨다. 잃은 양을 찾아오시는 사랑의 주님을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 때 그 감격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후 주님과의 사귐이 시작 되었고 나는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는 확신을 했다. 그리고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다. 청년 시절이었다. 예수님을 만난 후 그리고 긴 방황이 끝나고 다시 교회로 돌아왔을 때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었다. 교회에서 나는 이방인이었다. 내가 본 환상 - 예레미아서를 앞에 놓고 내가 울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서 ‘이 곳은 하나님의 전이 아니라’고 외치는 예레미아 선지자를 성경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군중들의 돌에 맞아 우는 예레미아를 보았다. 나는 지금 한국교회를 향해 ‘교회가 이미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에 예수가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한 평판을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예수가 없는 교회를 보며 외칠 뿐이다. 박사를 상징하는 팔에 줄이 셋 있는 가운을 입고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의 사진을 보았다. 내 눈에는 허황되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목사들이 고급 승용차를 타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일까? 저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알 수 있을까? 가난을 대물림해야하는 현실을 알지 못하는 까닭일까? 소비가 미덕인 탓에 한국경제를 생각해서 일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일까? 수도자의 청빈은 무능력한 탓일까? 목사님의 헌신에 감동해서 장로들이 자발적으로 고급 승용차를 사드렸다는 항의 전화를 받고 나는 슬펐다. 정상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항의할 때 서글펐다. 나는 누구를 비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모든 사람들이 목사가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과 박사인 것을 훌륭하게 생각한다면 좋은 일이다. 그리고 교인들이 문제를 삼지 않고 목사를 좋아 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나는 교회를 보면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본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를 하면서 주님께 물었다.
“주님 오실 날이 언제 인가요? 저 너무 힘들어요.” 주님이 빙그레 웃으시는 것 같았다. 주님의 웃음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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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0월 24일 07:30:20 / 수정 : 2006년 10월 25일 07:17 |